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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활용한 과제 계획서 작성에 주의할 점

최근 정부과제 평가위원회에 평가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피부로 느끼는 변화 중 하나는, 과제 계획서 작성 과정에서 AI를 활용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AI를 어설프게 활용해 문맥이 어색하거나 기술적 깊이가 떨어지는 계획서는 금방 눈에 띄었고, 오히려 ‘성의 부족’으로 간주되어 감점 요인이 되곤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가 어찌도 빠른지, 이제는 AI를 쓰지 않고 작성한 계획서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로, R&D 현장의 필수 도구가 되었다.

1. 과제 계획서 작성의 기본 도구가 된 AI

최근 몇 차례의 평가 위원회에 참여하며 짧은 기간 동안 서른 개 이상의 과제 계획서를 검토할 기회가 있었다. 

놀라운 점은 대다수의 계획서가 ‘대놓고’ AI의 손길을 거쳤다는 점이다. 

물론 그중에는 AI를 도구 삼아 문장과 내용을 유려하게 다듬은 경우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또 재미 있는 부분은 제출된 계획서들의 내용이 비슷한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동일한 RFP를 기반으로 작성된 계획서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기술적·사업적 내용의 뿌리가 하나인 것처럼 흡사한 경우가 많았다. 

연구 주제와 목표, 양식이 동일하다 보니, AI가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표준적이고 정답에 가까운’ 내용을 구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평가위원의 입장에서 보면, 기업마다의 고유한 고민이나 차별화된 전략은 보이지 않고 매끄럽게 정리된, 그러나 알맹이는 없는 ‘표준 답안지’만 수십장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과제 계획서용 AI Logo
<과제 계획서 작성에 활용가능한 다양한 AI>

이러한 현상은 비단 제출된 계획서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필자는 다양한 기업의 R&D 기획을 자문하면서, 기업의 실제 연구 역량을 파악하기 위해 현시점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간략한 개발 계획서를 요구하곤 한다.

과거에는 많은 기업이 문서 작성 자체를 어려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하며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요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결과물을 가져오곤 한다. 

문제는 ‘가져오기만 한다’는 것이다. 

깊은 고민이나 방향성 없이 회사소개서나 기존의 파편화된 기술 자료를 AI에 던져 넣고는 “이걸로 계획서 하나 만들어줘”라고 명령한 수준의 결과물들로 보인다.

이런 문서를 마주할 때면 기획자로서 깊은 안타까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AI가 만들어준 화려한 문장과 구조가 ‘완성도 높은 계획서’라고 착각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비싼 버전의 것을 사용해서 작성했다며, 자랑하는 기업도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그 안에는 멋진 수식어로 포장된 껍데기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작 중요한 ‘어떻게’와 ‘왜 우리여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답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 AI를 사용하기 전 ‘의도’가 있어야 한다.

분명히 짚고 넘어갈 점은, AI 활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기술과 역량을 갖추고도 문서화 능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게 이는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적극적으로 권장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설픈 AI 의존은 오히려 기업의 장점을 깎아먹는 독이 될 때가 있다. 

AI가 문장을 포장하는 과정에서 기업이 가진 기술적 강점이 둥글게 뭉개지기도 하고, 현장의 고민이 담겨야 할 세부 계획이 엉뚱하고 일반적인 단어로 대체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기업이 처음에 세워 놓았던 발전 계획의 방향이 엉망이 되는 것도 보았다.

실제로 기업의 발전 방향과 전혀 맞지 않는 AI의 ‘환각’ 현상이 계획서 곳곳에 지뢰처럼 박혀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필자 역시 업무 효율을 위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목적에 따라 여러 종류의 모델을 스위칭하며 사용하고, 덕분에 동일한 시간에 훨씬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AI의 사용을 최소화 할 때가 있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바로 기업의 ‘본질을 파악하는 단계’다.

좀 간단하게 말하자면, 기업의 대표 또는 실무자와 처음 만나 의견을 정리할 때라고도 할 수 있겠다.

1) 기업의 핵심 기술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확한 정의가 필요할 때
2) 우리 회사가 가진 진짜 강점과 약점을 분석할 때
3) 향후 3년, 5년 뒤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파악’할 때

최소한 이 단계에서는 AI를 적극적으로 쓰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정리되지 않은 정보를 입력해 AI에게 답을 구하면, 필자와 기업이 지향하는 방향성이 왜곡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먼저 인간의 머리로 명확한 의도와 기준을 세운 뒤, 그 내용을 풍성하게 하거나 구조화하는 단계에서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 좋은 예로, 기업으로부터 AI가 작성한 계획서를 받아 기업을 파악해야 되는 순간이 있었다.

처음에는 멋있게 포장된 문장으로 기업을 파악하고 계획을 작성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현실과 동떨어진 결과물만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처음에 AI가 작성했던 계획서는 나중에 가서 ‘누가’ ‘왜’ 그런식으로 작성했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까지 간 것이다.

3. 질문의 수준과 결과물의 수준은 유사하다.

단순한 질문으로는 단순한 답변밖에 얻을 수 없는 것은 명확하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기획력’에서 나올 수 있다는 의견에 일부 동의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기업의 현재 수준을 기업의 대표나 실무자가 객관적으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밀하게 쪼개어 세부 진행 방향을 먼저 정리해야 한다. 

명확한 기준 아래에서 기업의 역량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AI가 만든 화려한 문장은 결국 평가장에서 웃음거리만 남게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또 AI가 더 발전하게 되면, 이런 필자의 의견도 그저 노파심으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현 시점을 기준으로 보자.

AI라는 편리한 파도에 휩쓸려 우리 기업만의 고유한 색깔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을까?

한번쯤 고민해 볼 만한 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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